자기 자신 안에 있는 근원의 샘물을 찾아야 한다.
헤르만 헤세가 지은 싯다르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내용에 대해 알아보고 그 느낀 점이 무엇인지 써보겠습니다.
책 소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근원의 샘물을 찾아내야만 한다.
데미안 집필 이후 극심한 두통과 불면증 우울감 속에서 헤르만 헤세는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보 같은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가? 혼탁한 세상에서 피워낸 한 송이 연꽃 같은 위안이 되는 소설입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나 꽃을 피워내는데요. 나 자신도 사는 게 진흙같이 힘들지라도 삶이란 연꽃을 피워내게 용기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헤르만 헤세가 1922년 발표한 장편소설 싯다르타는 그 사상적 깊이는 차치하더라도 드라마틱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면에서 현대의 소설들을 넉넉히 압도합니다. 마흔다섯의 헤세가 데미안 발표 이후 극심한 우울감으로 정신 상담으로 받는 시기에 구상, 집필하고 발표한 소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로 대표되는 데미안의 내면 탐구는 싯다르타에서도 이어지며 결국 작품의 말미에서 헤세는 해답을 내놓습니다. 바보 같은 세상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 우리가 오늘날 이 책을 다시 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열림원은 지난달 헤르만 헤서 컬렉션을 시작하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첫 권으로 내놓았습니다. 선교사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그 자신이 신학교에 입학했다 자퇴한 것에서도 드러나듯 기독교 문화와 관계가 깊은 헤세이지만 동양 , 특히 인도의 사상 또한 그의 한 면을 지탱했습니다. 헤세의 외할아버지는 저명한 인도 학자였고 , 그의 외사촌 빌헬른 군데르트 또한 동양학 특히 중국과 일본의 불교에 정통한 이름난 학자였습니다 소설 싯다르타를 헤세 자신의 사상서로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헤세는 이 작품에서 세상 속에서 인간이 맞닥뜨리는 무수한 고민들을 풀어놓고 치열하게 그 답을 찾아 나섭니다
간략 줄거리
인도 브라만 계급도 청년이 노년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는 구도의 여정, 깨달은 자와 구하는 자가 헤어지고 만나는 눈부신 순간을 그려냅니다. 싯다르타는 브라만 청년 싯다르타와 친구 고빈다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걸어가는 다양한 구도의 길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브라만으로 날마다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하며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던 싯다르타는 어느 날, 명상 중에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존경받는 브라만인 아버지 , 최고의 스승들, 그들은 과연 행복한가? 그들 또한 끊임없이 목말라하는 구도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끝없는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근원의 샘물 즉 참나를 찾기로 결심합니다. 함께 브라만의 길을 걸어가던 친구 고빈다가 싯다르타를 따릅니다. 수행 면에서 스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싯다르타. 그가 가는 길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두 청년은 고행 수도승이 되어 고통스러운 수행에 몸을 맡깁니다 갈증과 추위를 극복하고 숨과 맥박을 조절하며 자아를 없애고 명상 속에서 왜가리가 되고 죽은 자칼이 되고, 돌, 나무, 물이 되었습니다. 명상은 더욱 깊어져 자기 자신을 죽이고 공에 상태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지만 단지 그뿐 명상의 끄트머리에는 다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회를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좌절에 빠진 싯다르타의 귀에 고타마에 대한 소문이 들려옵니다. 세상의 번뇌를 극복하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한 고타마 , 두 청년은 그를 찾아 또다시 여정에 오릅니다.
고타마가 머무르는 제따와나 숲, 그곳에서 첫 번째 헤어짐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고타마의 제자가 되기로 한 고빈다와 달리 싯다르타는 숲을 떠나 깨달음의 순례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
강물에 돌을 던지면 돌은 가장 빠른 방법으로 강바닥에 가락 앉아요 , 싯다르타가 목표를 , 계획을 세운다면 그렇게 될 거예요 , 싯다르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싯다르타는 기다리고 생각하고 단식 정진합니다. 돌이 물속으로 가라앉듯이 세상의 일을 관통하지요 , 아무것오 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마음 쓰지 않고 말이지요 , 이끌려 가게 , 가라앉게 내버려 둡니다. 그의 목표가 그를 끌어당기는 이유는 그가 자신이 세운 목표에 역행하는 것은 그 무엇도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싯다르타가 사문들에게 배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보들은 이것을 마법이라고 부르고 귀신들이 이것을 행한다고 생각하죠 , 귀신들이 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요. 귀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누구나 마법을 부릴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어요
이루기로 마음먹은 것을 모두 이룬 싯다르타는 그러나 변해갑니다. 술과 도박에 빠지고 , 사업을 함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놀이와 같이 그것을 즐겼지만 갈수록 초조해지고 성패에 연연하게 됩니다 사십 대에 접어들어 흰 머리카락을 내보이게 되었고 , 피어나는 꽃과 같았던 연인 카말라의 얼굴에서는 피로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그 자신이 경멸애 마지않던 불쾌함이 그의 얼굴에서 엿보이기 시작했을 때 싯다르타는 그 순간 큰 슬프을 느낍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과 얻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는 모든 것을 두고 떠납니다.
깨달음은 말이 될 수 없지만, 그것은 우리는 구원할 수 있습니다 싯다르타의 소설적 묘미는 싯다르타와 고빈다의 만남과 헤어짐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두고 목적지도 없이 길을 떠난 싯다르타의 마음속에 사실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죽음, 깨달은 자 고타마 앞에서 당당하게 깨달음이라는 목적을 제 스스로 이루거나 그렇지 않다면 죽고 싶을 뿐이라고 선언했던 싯다르타는 결국 죽음이라는 길을 택합니다.
실패한 삶의 형상을 때려 부수는 것, 그리하여 비웃는 신들의 발치에 그것을 내던져 버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 그가 증오했던 형상을 파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가 그리워했던 돌파구였던 것이다. 물고기들이 뜯어먹어도 좋았다. 싯다르타라는 속물을 , 제정신을 잃어버린 남자를 , 망가지고 썩어가는 몸뚱어리를 맥일 풀리고 학대받은 영혼을 물고기들과 악어들이 그를 먹어치워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악마가 그를 갈기갈기 조각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싯다르타는 벼락같이 완전한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하고 이내 깊은 잠에 빠집니다. 그리고 다신 깨어났을 때 십 년은 지난 것 같다는 느낌과 함께 자신 앞에 앉은 채로 잠든 한 남자. 고빈다와 재회합니다. 고타마의 제자가 되어 오랫동안 수행의 길을 걸어가던 고빈다가 위험한 곳에서 잠이 든 한 남자를 보고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그의 곁을 킨 것입니다 먼저 친구를 알아본 싯다르타 덕분에 둘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지만 현재의 모습에 대한 대화일 뿐 이 둘은 다세 헤어져 자신의 길을 갑니다. 잠에서 깨어난 싯다르타는 강의 모습에 깊을 사랑을 느끼고 강물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이후 싯다르타의 삶은 강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합니다. 그러나 강은 카말라와 카마스 바미의 인간 세상이 그랬듯이 싯다르타에게 또 한 번 깨달음을 위한 경험을 요구합니다. 싯다르타의 마지막 장은 고빈다입니다. 평생 계율을 지키며 젊은 승려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는 마지만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현자로 추앙받고 있는 강가의 사공을 찾아 나섭니다. 고빈다는 사공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 날 길을 떠나기 전에 사공에게 단 한 가지라고 좋으니 가르침을 달라고 청합니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그러나 고빈다는 끝내 현자의 입에서 나오는 단 하나의 가르침을 듣지 못합니다. 다만 그 사공이 된 싯다르타의 미소를 볼뿐입니다. 강가에서의 싯다르타의 뜨거운 경험, 싯다르타와 고빈다와의 대화는 작품을 직접 읽는 독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입니다. 다만 작품은 이러한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싯다르타의 미소는 고빈다로 하여금 그가 평생 사랑했던 모든 것을 , 일찍이 그의 삶에서 가치 있고 성스럽다고 여겨졌던 그 모든 것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게 해 줘, 말은 우리의 비밀스러운 감각에는 해로운 법이니까 ,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모든 것이 늘 약간씩 달라지거든. 약간 왜곡되고 약간은 바보 같아지지. 그래 그것도 좋고 내 마음에 썩 들어 어떤 사람에게는 보물이자 지혜가 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늘 바보짓처럼 들릴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동의해
사랑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세상을 꿰뚫어 보고 세상을 설명하고 세상을 경멸하는 것은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인지 모르겠어. 내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 세상을 경멸하지 않는 것,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이로움 마음과 경외심으로 관찰하는 것, 이런 것이야.
싯다르타의 웃음인 이 웃음은 바로 고타마의 웃음과 정확히 일치했다. 말없이 고요하면 그 속을 꿰뚫어 볼 수 없는 선한 듯하면서도 비웃는 듯한 현명하면 수천 가지의 모습을 지닌 고타마. 즉 붓다의 웃음이었다.
시간이 존재하는지 , 이러한 관찰이 1초 동안 지속되는지 아니면 수백 년 동안 지속되는지 싯다르타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지 고타마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지 나와 네가 존재하는지 더 이상 알 수 없는 채로 신이 쏜 화살에 맞아 마음에 달콤한 상처를 입은 듯이 마법에 사로 잡혀 마음이 흐물흐물 해제되는 듯이 고빈다는 한 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느낀 점
세상을 너 넓은 시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깨달음은 말과 글로 알 수 없고 결국 스스로 체험해서 터득해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모든 경험은 소중하고 나로 집중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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